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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국민 갈등은 ‘성장통’…… 배려로 풀자
등록일 2008.09.17
< 중앙일보 9월 17일자 기고문 >



한중 국민 갈등은 ‘성장통’…… 배려로 풀자



중국한국상회 고문 김동진

(포스코 차이나 동사장)



중국 내 반한 정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92년 수교 전부터 중국에서 근무했던 필자도 올림픽 때 적잖게 놀랐으니 국내서는 훨씬 더했을 것이다. 이번 논란은 여러 가지 문제점과 시사점을 함축하고 있다. 어쩌다 갑자기 이렇게 됐으며 한국인이 많기는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지도 마찬가지인데 유독 중국에서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정말로 중국에 반한 또는 혐한 정서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만일 그렇다면 중국인의 마음을 상하게 한 요인은 무엇인지? 등등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수교 16년을 맞는 한중 양국 관계를 곰곰이 되돌아 보게 하는 좋은 계기임에 틀림없다.



한국과 중국은 여러 면에서 서로에 특별하다. 분명 외국이지만 외국이라는 느낌이 강하지 않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낯선 이국 땅에서 오는 긴장감 대신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중국을 찾는 한국인이나, 한국을 찾는 중국인 모두 같다. 문화적, 정서적 동질감이 그만큼 강하다는 반증이다. 급속히 발전한 양국간 경제협력은 서로의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 들어있다. 작년 한해 하루 평균 1만2천명의 한국 사람들이 중국을, 4천100명의 중국인이 한국을 방문했다. 중국에 상주하는 한국인은 80만 명, 한국에 상주하는 중국인도 무려 56만 명에 달한다. 16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엄청난 인적 교류가 이뤄지기는 중국, 한국 모두 처음 겪는 일이다.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 ‘광범위하면서 깊게 밀착된 유대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 부대끼고 아옹다옹 하면서 미운 정 고운 정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난번 올림픽 경기장에서 있었던 일 또한 그런 측면에서 대범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양국간에 이런 기류가 흐르게 된 데는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아프게 다가온다. 중국은 이미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이번 올림픽은 이 같은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확인시키는 계기였다. 미국이나 유럽 등 최고지도자들이 올림픽 개막식에 대거 참가한 사실은 달라진 중국의 국제적 위상을 웅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웃나라 한국은 이런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 든다고 중국인은 느끼고 있다. 또 미국이나 다른 외국에서는 할 수 없는 언행도 중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하려 한다는 것이다. 중국인이 자존심 상해하는 대목이다. 과거 중국이 한국의 산업화 성공을 배우려 노력했듯 한국 또한 중국의 개혁 개방 성공과 경제 발전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이 처한 현실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일궈낸 한국의 저력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현실은 분단의 아픔 속에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세계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국이 강대국인 것으로 착각하고 우월적 언행을 일삼는 사람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중국인은 한국 경제성장의 동력을 한국인의 강인한 정신력에서 찾고 있다. 고난과 역경에 굴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 실패를 두려워 않고 저돌적으로 파고드는 도전정신 등 한국의 국민성을 높게 사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국민성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휘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지리적으로 아무리 가깝고 관계가 좋더라도 중국은 분명 외국이다. 상주하는 주재원이나 유학생 그리고 여행객도 마찬가지다. ‘손님’과 ‘주인’이 뒤바뀐 것 같은 언행은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외국 어느 나라에서도 삼가 해야 할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 내 반한 정서가 실제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 의문이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양국간 관계가 소원해지는 조짐을 보이는 것은 어느 누구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토라지는 양국 국민 감정을 추스리려면 무엇보다도 양국 지도자간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야 한다. 駐유고 중국대사관 오폭 사건으로 인해 폭발한 반미시위나, 악화일로로 치닫던 중일 관계가 풀린 것은 양국 최고지도자간 만남과 소통 덕분이었다. 아울러 인터넷이 반한 감정이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통로라는 점에서 한국과 중국 모두 성숙한 인터넷 문화를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질서하고 무책임한 인터넷 정보가 유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양국 언론의 몫이다. 한가지 더 있다. 한국에 상주하는 중국인에 대한 배려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생활하는 조선족 동포들이나 공부를 하겠다고 한국을 찾은 7만 4천여명의 유학생들을 친한파까지는 아니더라도 지한파로 만드는 것은 그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관심에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이든 나라이든 갈등은 있기 마련이다. 지나치게 우려하거나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 지혜로운 해결 방안을 찾아내면 된다.